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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의 유래와 역사

by SB리치퍼슨 2017. 2. 17.

면의 유래와 역사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면이란 밀가루(小麥)에 물을 부어 반죽을 한 후 이를 펴서 칼로 가늘게 자른 다음 말려서 물에 넣어 끓여 먹거나, 혹은 만들자마자 젖은 그대로 끓여 먹는 밀가루 음식을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국수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의 말로 표현한 것일 분, 국수 역시 처음 만들어 낸 것은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국수 종류를 총칭해서 면(麵)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면류(麵類)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확실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소맥분을 이용해서 만든 식품에는 명칭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즉 소맥분 그 자체를 이용하여 만든 것을 원칙적으로 면이라 하는 것이고, 이 원재료를 가공하여 만든 것은 병(餠)이라 했다. 이러한 중국인에 의한 구분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하여져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처럼 구분하고 있으나, 소위 병(餠)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떡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중국인들의 인식에서 말한다면, 이는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빵에 해당하는 것이지, 우리가 말하는 떡하고는 차이가 있다. 

면은 일반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지는 빵보다 만들기가 간단하므로, 일찍부터 인류의 중요한 음식이 되었다. 그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5000년 경으로 어쩌면 인간이 가장 일찍이 만든 음식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늘고 긴 형태의 면이 만들어지는 것은 3세기 중국에서 였다고 한다. 당시는 위,촉,오 세 나라로 분립되어 서로 패권을 다투던 시기였는데, 이들 나라 중에서 조조가 세운 위나라에서부터 이런 형태의 면이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는 아직 고대 국가로서의 틀이 채 정립되지 않고 있던 삼국시기 초기에 해당되는데, 면이 한반도로 들어온 시기는 이보다 약간 후의 일로 여겨진다. 

면의 한반도 전래는 남부의 해양보다는 육지를 통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큰데, 이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소맥이 북부에서 많이 생산되었고, 또 북방의 중국인들이 면을 많이 먹는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평양이나 함흥 등 북부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었고, 이들 지역에서 면의 조리법도 발달한 것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전해진 면은 대체로 조리하는 방법에 따라 온면과 냉면으로 나뉘어 진다. 온면은 끓는 물에 넣어서 조리하여 탕과 함께 먹는 면이고, 냉면은 차게하여 먹는 면이다. 이들 면은 대체로 가늘고 긴 형태로 만들어서 조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 형태를 만드는 방법으로 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반죽을 하여 넓게 펴서는 이를 칼로 자르는 형이 있고, 다른 하나는 기름을 바르면서 손으로 늘려가면서 여러 갈래로 나누어 가는, 즉 중화 요리집에서 면을 만들 때 사용 하는 방법이다. 이들 기법도 곧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는데, 일반적으로 후자로 만들어지는 면(手打麵)이 훨씬 부드럽고 쫄깃쫄깃 했기에 사람들에게 애호되었다. 

이렇게 만든 면을 중국에서는 여러 형태로 조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후자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면은, 삶은 다음 이를 뜨거운 탕에다 넣고 다시 끓이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이를 ‘혼돈(混沌)’이라고 했다. 이러한 말이 쓰이게 된 것은 아마도 기름을 발라서 만든 미끈한 면가락을 다시 뜨거운 물에 넣어 끓이다 보니 더 부드러워지고 쉽게 끊겨서 젓가락으로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이름이 후에는 음식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글자 자체에 음식을 나타내는 식(食) 변이 삼수변(?)을 대신하여 붙여지게 됨으로서 ‘혼돈(??)’이라는 글자로 변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가 이것이 다시 뜨거운 음식이라 하여 ‘온돈(溫?)’이라는 글자로 표현되었다가, 음이 전화되어 ‘운돈’이라는 말로 사용되었고, 이것이 재차 보다 짧은 발음인 ‘우동’이라는 말로 변화되어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음이 전화하면서 ‘우동’이라는 말이 나타났다고 하는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음의 전환이 중국에서부터 있어 온 것인지, 일본에서 나타난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의 무로마치(室町) 시대 사전에서 ‘우동’이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이 말은 이처럼 조리하는 방법이 초기 어떤 형태로든 일본으로 들어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나 우동이라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좋아하는 우동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물에 넣고 끓여서 조리하는 모든 면류를 우동이라고 총칭했던 것을 보면, 중국에서부터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 아닌가 하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하는 ‘기쓰면’도 이들 우동류에 들어가는 면의 일종이다. ‘기쓰면’의 경우 이러한 말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바둑판위에서 먹는 면”이라 하여 ‘기자면(碁子麵)’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 혹은 중국의 ‘치자면(雉子麵)’이라는 발음에서 전화된 것이라는 말도 있으며, 혹은 일본의 기주(紀州)에서 발생되었다 하여 ‘기주면(紀州麵)’이라고 하는 데서 발음이 전화하여 나타났다고 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유래에서 보더라도 과연 중국에서 비롯된 것인지, 일본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우동류와는 달리 조리 방식은 같으나 일본인들에게 우동보다 더 상위로 치는 “소바(蕎麥)”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말로 메밀이라는 것인데, 메밀은 원래 점성(?性)이 없어 면음식으로는 적당치 않아 중세까지도 그다지 애용되지 않았던 식품이었다. 다만 구황작물로써 초여름 보리고개를 넘기기 위한 식품으로 억지로 사용되었던 식물에 불과했었다. 그러다가 일본 측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원진(元珍)이라는 스님이 천정년간(天正年間 : 1573~1591)에 일본에 와서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조금 넣고 끓이자 우동처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로부터 소바는 일본인들에게 더 없는 호평을 받는 음식으로 정착되어 오히려 일본인들은 면류(麵類)의 총칭으로서 우동이라는 말대신 소바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소바를 더 상위의 면으로 좋아했고, 지금도 그런 의식은 여전하다.  

어떤 문화든 얼마만큼 사회에서 이를 좋아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문화가 발달되듯이, 일본에서의 면의 문화는 비록 중국에서 들여오긴 했지만 일본인들 특유의 면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상품화 시키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물론 중국인들도 면을 좋아하여 중국에 가면 수많은 종류의 면을 볼 수 있지만, 일본인들처럼 세계적인 면으로서 발전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또한 마찬가지이나, 따라서 자신의 문화를 이제는 자기 안에서만 발전시킬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상품으로서 세계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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