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객만래 [千客萬來] (It has an interminable succession of visitors)
소심지수 측정

소심지수는 소심지수 테스트 14개 항목에 대해

그렇다 5점,
아니다 0점

산출점수에 따라

소심형 : 50~70점
소심과 대범의 혼합형 : 20~49점
대범형 : 0~19점

소심형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일도 민감하고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상처를 받기 때문에
겉으론 태연한 척 웃고 있지만 늘 소심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전언이다.


소심과 대범의 혼합형은 별 일 아닌 사안에는 소심하게 굴다가도 막상 큰 일이 생기면
대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대범형은 매사 ‘별 일 아니네` 하고 넘기는 스타일이지만 무신경하기도 해서
심각한 사안에 대해서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경우를 보인다고 디시인사이드는 전했다.





<테스트항목>


1. 뒤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면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2. 엄마와의 싸움 뒤, 배가 무척 고픈데도 `야, 너 밥 안먹지?`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잔 적이 있다.

3. 누군가 뒤에서 놀래켜 화들짝 놀랬으면서도 멋쩍은 웃음을 던진 적이 있다.

4. 웃기려고 던진 유머였는데 슬그머니 말을 줄인 적이 있다.

5.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불렀는데도 반응이 없어 은근히 마이크를 놓은 적이 있다.

6. `그냥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7. 40화음이 아닌 휴대폰 벨소리라 진동으로 바꾼 적이 있다.

8. 주문한 건 짬뽕인데 나온 건 자장면. 바꾸지도 못한 채 그냥 먹은 적이 있다.

9. 하나 남은 단무지에 서로 눈치만 보다가 남기고 온 적이 있다.

10. 친구들이 나를 두고 과자라도 먹고 있으면 서운하다.

11. 소리내고 못 웃어서 담에 걸린 적이 있다.

12. 상대방이 화를 내면 나 때문이 아닌지 계속 걱정한다.

13. 꽃병 귀퉁이 깨트리고 일주일동안 고민한 적이 있다.

14.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중인 성대모사. 집에서 몰래 연습한 적이 있다.





Posted by SB패밀리

좋은 아버지들의 습관  


1. 자녀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라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다.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하늘 나라 의 장교이므로”

2.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칭찬하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행위야말로 참 사람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 자녀들이게 정서적 안정감을 심는다.

3. 자녀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해보라

인간을 가리켜 놀이하는 인간이라 부른다.

놀이를 잃어버리면 인생을 알지 못한다.

자녀들과 함께 컴퓨터 게임을 해보라.

가장 좋은 아버지란 놀이친구라 한다.

4. 자녀들에게 아빠의 앨범을 보여주어라


가정은 추억의 박물관이라 부른다.

자녀들에게 어리 시절을 이야기해 주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소개해 주어라.

비로소 가족 연대감이란 끈으로 묶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5. 아빠의 요리솜씨를 뽐내어 보아라

참 사랑은 뱃속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별식으로 깊은 사랑을 새겨보아라, 기쁨과 감사로 배불러진 아이들을 보게 될 것이다.

6. 자녀들에게 조크를 던져보아라

하루에 한번씩만 웃을 수 있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다.

더구나 웃음은 관계건축가라 불리운다.

자녀들을 소맹(消盲)으로부터 탈출시켜라, 그리고 참 행복을 가르쳐라.

7. 자녀들에게 쪽지 편지를 써보아라

편지를 쓰는 것은 마음 하나만으로 어디엔가 도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고
말한 것은 필리스 테루였다.

자녀들의 책상서랍이나 도시락에다 쪽지를 써서 넣어 두어라.

가장 짧은 글로 가장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도구가운데 쪽지 글 만한 것도 없다.

8. 가끔은 특별 상여금을 지불해 주어라

자녀들에게 특별한 날이 아닌 때 주어지는 상여금은 더 큰 감동을 준다.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투자해 보아라.

사랑은 절로 익어간다

9. 자녀의 방을 방문해 보아라

자녀의 방을 훔쳐보거나 엿보는 것은 불신만 가중시킨다.

방문해도 되겠는지 정중하게 허락을 받은 다음 아이 방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라.

10. 자녀들과 잠포지움을 개최해 보아라.

온 가족이 거실에서 공동으로 잠자리를 만들어 보아라.

주제는 어떤 것이든 좋다.

서로 잠자리를 같이 하며 나누는 베겟밑 대화처럼 친밀한 대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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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버지나 어머니는 자녀가 인생의 길을 잘 찾을 수 있는 이정표가 되거나 이정표를 찾아 볼 수 있는 가이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보운전자가 운전할 때 보조석에 베테랑이 타고 있으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나하나 지시하고 잔소리하면 초보운전자가 제대로 운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일일이 다 가르쳐 주면서 하는것 또한 혼자 운전하게  될 때 낭패를 볼 수 있다.

그저 옆에서 바라보면서 목적지까지 잘 찾아가는 조언을 해준다거나 도착후에 잘한 점과 잘못한 점에 대해서 충고해준다면 좋을 것이다.



반 말은 싫지만 좋은 내용은 기억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자.

 

 



Posted by SB패밀리
'미스 미팅왕'과 '미스터 하숙집'

-봉준호의 살 맛 나는 부동산-

봉준호 닥스클럽 대표이사 | 05/23

1989년 5월 오후… 실록이 아름답게 세상을 녹색으로 덮고 있었다. 대학가에는 1학기의 중간 고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신촌 Y大 중앙도서관에서 한바탕 큰 소음이 났다. 두꺼운 안경을 낀 남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음이 나는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런, 쯧쯧…”
“침이나 흘리지 말지.”
“얼마나 시험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정외과 K양이 도서관 책상 위에 머리를 박고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부시시…” K양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이 흐리고 정신이 몽롱했다. 왼손으로 ‘쓱…”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헉!”

시계를 보니 3시 10분… 전공 시험이 10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K양은 허겁지겁 경영대 건물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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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저 진상… 누가 데려갈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K양 방을 청소하면서 또 중얼거렸다. 방안에는 컵라면 그릇과 우유 곽, 새우깡 봉지, 벗어 놓은 속옷, 널부러진 책, 이불과 베게, 커피믹스… K양은 Y대 앞 하숙집에서 “찍힌 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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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힌 애를 알게 된 것은 그 하숙집으로 들어오고 일주일쯤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 후보를 뽑아 주셔야 한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날벼락치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내용을 들어보니 총학생회장이나 단대학생회장 출마 연습을 하는 웬 여학생의 고성이었다. 내 대각선 방에서 살고 있는 하숙생 “찍힌 애”… 바로 그 K양이었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왼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는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고함치는 내용을 노트에 쭉 받아서 적어 보았다. 십오분쯤 지났을까?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기에 나는 옷을 주워 입고 그 방 문 앞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큰 목소리가 조금씩 사그러들더니 방 주인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학생… 산에 가서 연습 좀 하지…”
“죄송합니다. (긁적 긁적) 하숙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내일 과대표 선거라서…”
“총학생회장 선거도 아니고 과대표야?”
“네… 저한테는 좀 중요한 거라… (긁적 긁적)”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연신 머리를 긁어댔다. 나는 눈만 껌뻑였다. 소란죄로 처벌하거나 미워하기엔 너무도 순진한 인간이었다.

며칠 후 토요일 저녁 7시쯤… “똑똑”하고 누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하숙집 아주머니려니 하고 “네”라고 대답한 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누군가 방문을 열더니 한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책상에서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K양이었다.

“저… 아저씨… 미팅하실래요?”
“응? 나 요즘 좀 바쁜데…”
“괜찮으시다면 지금 1시간만 시간 좀 내주세요. 남자 한 명이 펑크를 내서요…”
“지금?”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신촌로터리 B다방으로 갔다. B다방 한쪽 구석에 5명의 남자와 5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들은 대학교 3학년, 4학년의 복학생들. 여자들은 대학교 3학년생들이었다. 나만 직장인이었다. K양과 K양 친구 L양이 기획자 겸 주선자였다.

“자, 남자분들은 각자의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 주세요. 여자분들은 눈을 감으시구요.”

나는 쑥스럽게 볼펜을 꺼내 놓았다. 라이터, 열쇠고리, 반지, 수첩 등 다양한 물건들이 테이블 위에 모아졌다.

“자, 여자분들은 여기서 한 개씩들 집으세요.”
“다 집으셨어요? 그럼 각자 파트너를 따라서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세요.”

오분 후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찍힌 애”였다. 그녀는 몹시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아저씨, 죄송해요. 그렇다고 너무 실망 마세요. 제가 아저씨하고 1차로 차 한 잔하고, 2차엔 제 친구 이쁜 애 소개 시켜 드릴께요.”
“히~~~. 괜찮아.”

마음씨가 이뻤다.

“너 고향은 어디냐?”
“부산 인데요.”
“넌 꿈이 뭐냐?”
“커플매니저요.”
“그것 참…”

다방에서 설탕 가득, 프림 가득 쓴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우리는 대학가 깊숙히 위치한 싸구려 횟집에 가서 모듬회 한 접시와 소주를 시켰다. 잠시 후, K양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오더니 퀸카 C양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저씨, 인사하세요. 제 친구 C예요. E大 3학년이구요. 저하고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노량진 D학원에서 재수도 같이 했어요.”

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의 미인이었다.

“이런…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데… (C양에게) 실례지만 어디 사시나요?” 내가 물었다.
“전 E大 앞에서 하숙하고 있어요.” C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럼 두 분 친구이신데 같이 사시지 왜 따로 사세요?”
“서로 학교도 다르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요.”
“각자의 역할?”
“네, 우리는 대학 시절동안 서로에게 100번씩 미팅을 시켜주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K는 남학생들이 많은 하숙집에, 저는 여학생들이 많은 하숙집에 살기로 했어요. 후훗… 미팅하시려는데 여자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전화 번호 가르쳐 드릴께요.”
“세상에…”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나는 인사동 골목에서 우연히 K를 만났다. 정장 투피스에 스타킹, 핸드백에 구두까지… 옛날의 츄리닝 Girl K양이 아니었다.

“야… 너 많이 이뻐졌구나, 너 무슨 일 하니?”
“미국계 B은행에 다녀요.”
“그래? 친구 C는?”
“N항공사에 다녀요.”
“그래? 결혼들은 했어?”
“아니요. 아직… 저 C하고 같이 살아요. 한 번 놀러오세요.”
“그래. 정말 반갑다.”

며칠 후 나는 오렌지 주스와 성냥을 사 가지고 K양 집에 놀러 가서 너무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그 집엔 여자들이 자그마치 40명이나 있었다. K와 C는 E大앞 대형 한옥을 빌려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 명의 하숙집 주인은 이쪽, 저쪽 집 내부를 안내하면서, 하숙 생활 10년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자랑스레 설명했다. 나는 한참을 웃었다.

“고것들… 재주꾼일세…”

그로부터 몇 달 후, K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희 둘 다 결혼하게 됐어요. 그런데 하숙집 인수하실 생각 없으세요?”
“그래, 정말 축하해. 근데 내가 하숙집을?”
“네, 4천만원 투자하시면 월 200만원씩 버실 수 있어요. 아주머니 한 분만 잘 관리하시면 되고… 식사와 청소는 전부 자율제로 만들어 놓았어요. 하숙집 하시면서 좋은 파트너감도 물색해 보시고요. 흐흣…”

나는 하숙집 주인이 되었다. 40명의 고객을 가진 활기찬 중소기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하숙생이 반으로 줄었다.

“왜 그러지?”

나는 하숙생들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여러분… 하숙집이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나요? 허심탄회하게 말씀 좀 해주세요.”

2~3시간쯤 술잔이 오가고, 여학생들이 입을 열었다.

“미팅이 없어졌잖아요. 이성 잘 만나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지도사 언니도 없고…”

그 하숙집에 다시 인원이 차는데 정확히 1년이 흘렀다. 그리고, 3년쯤 하숙집 주인 생활을 잘 하다가, 가옥 매매로 하숙집이 헐리게 되어서 나도 대학가를 떠났다. Mr. 하숙집은 앞 건물과 합쳐져 대형 피자집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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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C가 찾아왔다.

“아저씨 안산에 상가를 샀는데 고민돼서 죽겠어요. 이 돈 저 돈 모아서 현금 6억이랑, 은행대출 4억으로 6층짜리 상가를 샀거든요. 처음에는 임차인들이 꽉 차 있었는데 장사가 안된다고 하나둘씩 나가더니 지금은 텅 비었어요. 팔려고 해도 산 가격의 반밖에 안 준데요. 한 때는 15억도 넘었었는데… 그리고 매월 몇 백만원씩 은행 이자를 내야 하는데… 그 동안엔 월세를 받아서 은행 이자를 내고 얼마씩 남았는데 이제는 정말 큰 일이예요.”

C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나는 C를 데리고 안산에 갔다. 대학 캠퍼스 앞의 모양 괜찮은 상가였지만, 당장 불경기에 마땅히 입점할 점포주를 찾기는 어려워 보였다.

“시간이 흘러야 될 것 같다. 당장은 팔리지도 않을 것 같고… 내가 연구를 해볼게.”

나는 건물 설계도면과 지적도, 건축물 관리 대장을 떼어 오게하고 주말 내내 스케치를 수십장 했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Y大 후문 까페에서 C와 K를 만났다.

“이 문제는 결국 너희들이 잘 하는 방법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상가를 약간 손봐서 20개의 모던 스타일의 원룸으로 만들었다. 빨간 벽돌을 붙이고, 느티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그리고, 세대 당 500만원 보증금, 월세 30만원에 임대 놓도록 했다. 3달 만에 학생들과 업소 여성들로 원룸 20개가 모두 꽉 찼다. 그 후로도 몇 차례는 내가 왔다갔다하면서 손을 봐 주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믿을만한 근처 부동산 업자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세대 당 관리비 3만원씩 나오는 것은 모두 부동산업자가 갖고, 청소하고, 관리하고 임대 놓는 조건이었다. 임대 수수료는 별도로 또 주기로 하고… 그 후, 가끔씩 속을 썩이는 임차인은 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월세가 통장으로 잘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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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오후. 실록이 아름답게 세상을 녹색으로 덮고 있다. 대학가에는 1학기 중간 고사가 시작되고 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우리 회사 상담실 한 구석에서 한 바탕 큰 소음이 들린다. 무슨 일인가 걸어가보니…

검은 머리에 웨이브 퍼머를 하고 붉은 빛 입술을 칠한 커플매니져 K아줌마가 상담용 책상 위에 머리를 박고 코를 골면서 자고 있다. 16년 전의 "찍힌 애" Miss 미팅왕 K양이다.

“저런… 침이나 흘리지 말지… 밤에는 뭐하구…”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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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스트레이트 EP8 


단독 세월호 모욕단체 삼성 돈 지원





출처:  https://youtu.be/NVhbRwADf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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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관리] 완벽해야 행복한가, 행복하면 완벽한가?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기대와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행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다면 행복할 텐데…”

그러나 인생은 완벽하지가 않다. 고조될 때가 있는가 하면 좌절할 때도 있다. 얻는 게 있는가 하면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하면 행복할 텐데..”라고 말하고 있는 이상, 아직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어떻게 보면 행복은 결심이요, 결정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처럼, 언젠가 ‘행복’에 이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 모든 게 원하는 자리에 있으리라고,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 난 행복해졌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야..”
“집을 사면 행복해질 거야..”

그러나 사실 정말로 그러한 일들을 성취해 냈을 때, 우리는 잠시 행복해 하다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곤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또 다른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들을 갖다 붙인다.

한 여든 다섯 살의 노인은 이런 글을 썼다고 한다.

“나는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했지. 실수할까 두려워 몸을 사리면서 말이야. 다시 한번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쓸데없는 것들에 매달리지 않겠어. 그냥 느긋하게 삶을 즐길 거야.

여행도 자주 가고, 많은 산을 오르고, 많은 강을 헤엄쳐 건너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다 가보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많이 먹고,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도 싫어하는 것은 조금만 먹을 거야.

진짜 고통은 더 겪어도 좋지만 상상 속의 고통 따윈 겪지 않을 거야.

난 언제 어디서나 미리 미리 예방하고 예측하며 살았던 사람이야. 체온계 없이는, 보온병 없이는, 치약 없이는, 우산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순간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가벼운 차림으로 여행을 떠날 거야.

다시 태어난다면 이른 봄에는 맨발로 풀을 밟고, 가을이 깊어지도록 그 향기를 느껴보겠어. 회전 목마도 많이 타고, 해가 솟아오르는 광경도 자주 지켜 볼거야. 손주 놈들과도 오래 놀겠어. 다시 세상을 살 수만 있다면.”

이 노인은 행복해지기 위해 굳이 세상을 바꾸려 들 필요가 없었음을 마지막 순간에 깨달았다. 세상은 이미 아름답다. 바꾸어야 할 것은 모든 일에서 완벽해지려고 하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한 인도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행복해지고 싶거든 행복하여라!”

삶의 행복을 성취하는 비결에 대한 가장 함축적인 진리가 담겨있는 말이라 하겠다.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훌륭하며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너무 미래에만 몰입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즐기려고 남겨두었던 그 모든 것들을 결국에는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즐기려고 남겨둔 것들은 대부분 끝까지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바란다고 생각했었던 목표를 달성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그것을 즐길만한 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과는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가에 따라 좌우됩니다. 자신에게 삶의 여유를 허용할 때 당신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순간을 좋아할 때, 미래를 향한 여정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닌 성취를 위한 즐거움이 되며 당신은 삶을 행복하게 즐기면서도 훨씬 효율적으로 당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Posted by SB패밀리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 힘들어도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6.14)

존은 그런 묘기와 이벤트보다는 상인들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반복적이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분명히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어시장은 몰려든 구경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했지만, 상인들은 주변의 그러한 소란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그들은 손님을 맞을 때, 어시장 안에 마치 그 손님과 자신만 있는 것처럼 오로지 한 사람의 고객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인과 손님은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과 상인의 마음이 서로 통했다는 점이었다. 어시장의 금전등록기가 미친 듯이 따르릉거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스테판 룬딘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그 후 이야기' 중에서 (한언, 18p)



파이크 플레이스. 'Fish'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미국 시애틀의 어시장입니다.
그곳은 항상 시끌벅적하다고 합니다. 웃음소리, 고함소리... 파티라도 열린 그런 모습입니다.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에서는 주문 받은 생선을 평범하게 전달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주문 받은 생선을 진열장 뒤의 동료에게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생선을 다른 상인이 멋지게 받아 포장을 한다는 것이지요. 가끔은 고객을 카운터 뒤로 초대해 날아오는 생선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도 벌입니다.

사실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은 이런 이벤트보다 그곳 상인들의 태도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들의 일은 단순반복적인 일이고 힘도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일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기에 상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결국 고객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고, 그래서 그 어시장이 그렇게 유명해졌겠지요.

예전에 시애틀에 갔을 때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에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 상인들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에서는 항상 창조적이고 흥미롭고 의미가 있는 그런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반복적이고 힘든 일을 하게되기 마련입니다.
그럴때는 힘이 들어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시애틀의 한 어시장 상인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SB패밀리

TENNIS - ATP World Tour - Rafael Nadal



Nadal won Rolex Monte-Carlo Masters in 2018



11th Title.





#ATPMasters1000 : 🏆 x 31
#RolexMCMasters : 🏆 x 11




Posted by SB패밀리
인간관계로 지쳤을 때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

자신을 탓해도, 다른 사람을 탓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해도, 근본적인 스트레스는 해결되지 않는다. 상사, 동료, 후배 등 회사 내 인간관계로 힘들 때는 다음 7가지 사항을 떠올리도록 하자.

1. 대인관계도 월급의 일부로 생각하자


저런 상사가 있는 회사에선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
“아무도 나 같은 건 인정 안해. 이제 회사 같은 데 다니기도 싫다.”

당신도 한두 번은 이런 생각을 했거나 말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을 바꿔 보도록 하자. 업무만으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인간관계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직장에서 하는 일은 아무리 머리가 나쁜 사람도 3년만 지나면 다 알 수 있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일에 붙어 다니는 덤이 아니다. 오히려 월급은 인간관계의 번거로움 때문에 받는 것이다. 업무야말로 인간관계의 덤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관계에서 약간의 불편한 점이 있어도 곧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2. 인간관계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자


항상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대라도, 그날의 기분, 상황, 환경 등에 따라, 상대도 나도 느끼는 방법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러나 늘 겉으로만 도는 교제만 하고 자신의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인간관계를 정하는 것은 공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정서적인 부분이다.

먼저 사람과의 관계를 머리로 생각하는 태도는 버리자. 그때 그때 실시간으로 상대에게 어떤 느낌을 받는지, 머리가 아닌 배와 가슴으로 느끼는 습관을 들이자. 배가 편안하고 기분 좋으면 상대에게 플러스 감정을, 화가 치밀거나 위를 쥐어짜는 것은 마이너스 감정을 느낀다는 증거다.

그런 느낌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감정의 움직임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인정을 하고 나면 조절하는 것도 쉬워진다.

 

3. 화가 치밀어도 한 호흡을 쉬고 난 후 대응하자


화가 나는 걸 참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노여운 감정을 억압하고 마는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 화를 그대로 상대에게 쏟아붓기 전에, 자신에게 ‘잠깐만!’ 하는 사인은 보내야 한다. 


가령 후배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일단 한 호흡을 쉬도록 하자. “정말 속 터지네. 하지만 나도 신입시절에는 저렇게 실수를 해서, 선배를 힘들게 했을지도 몰라”라든가, “후배 책임이라고 만은 할 수 없지. 내 지시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 등등 말이다.

화가 나도 그렇게 한 호흡을 쉬고 난 후 상대에게 이야기하면 훨씬 전달이 잘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화를 내도 오히려 존경을 받는다.

 

4. ‘나’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훈련을 하자


자신을 충분히 전달하려고 하지 않고, 상대가 나쁘다 혹은 자신이 나쁘다고 정해버리면, 아무도 당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독선으로 정해 버리지 말고, 먼저 당신 자신을 전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나 자신’을 전달하려면, 용기를 내서 주체적으로 움직여 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인관계에 주눅 들어 있는 사람은, 사소한 상황에서부터 연습을 시작하자.
예를 들면 퇴근길에 동료와 차라도 한잔 마시려고 카페에 갔다. 모두 커피를 주문했다고 하자. 그럴 때 동료들을 따라가지 말고, “일도 끝났으니까, 나는 맥주!”하고 말해보자.

그 한마디로 그 자리의 공기가 달라진다. 그런 식의 자기 표현으로도 인간관계에 자신감이 붙는 것이다.

 

5. 아이처럼 감정을 드러내자 


인간관계가 편해지는 방법은 무리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그날 중에 은근히 드러내도록 하자. 상사에게 화가 났다면 바로 화장실로 가 ‘멍청한 놈, 언젠가 단단히 당할거야!’라고 속으로 소리친다.

집이라면 큰소리로 아이처럼 울어보는 것도 좋다.
퇴근길이라면 전신주를 차버릴 수도 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화난 감정을 드러내보면,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었나 하고 의외로 냉정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6. 누구와도 사이좋을 수는 없다

누구나 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성인군자이거나, 자기 자신의 존재감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어느 쪽이 아니면 모두와 사이좋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인정한 후 사회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어 상대와의 거리를 되짚어 보는 것도 인간관계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것은 한정된 사람만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당신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아도 상처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 역시 한정된 사람에게만 호의를 보내는 것일 테니까. 게다가 인간관계는 매일 변하는 것이니까, 어떤 상황에 서 예기치 않은 계기로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7. 진심을 솔직히 드러내면 관계는 변한다 


늘 자신의 업무 처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사. 이럴 경우라면 본심을 드러내며 부딪쳐 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과장님, 지금까지 몇 번의 기획서를 제출했는데, 한 번도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제 기획에 무엇이 부족한지,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비쳐야 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상대방 역시 당신에게 친절한 응답을 해 올 것이다.

직장 내 인간관계라 해도, 상대에게 진심을 보여주면, 반대로 신뢰도 원조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인간관계는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그 장애를 스스로 제거하는 용기를 가졌는지, 그것에 따라 달라진다.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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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집중한 시간을 기록해 보기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6.20)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작업 시간을 기록한다.
기록을 해두면 업무시간에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려고 허비한 시간이 얼마인지, 방해받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정신없이 지체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기록을 보면 하루에 6시간 동안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밤 애덤즈의 '팀장 리더십' 중에서 (위즈덤하우스, 145p)


이번 미국출장길에 들렀던 한 쇼핑몰. 복도에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보니 두 사람이 어른 키의 반쯤 되는 커다란 말들을 가지고 체스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번갈아 한동안 고민하다 말을 들어 바닥에 그려있는 체스판에 옮겨 놓고는, 타이머를 누르더군요. 자신이 체스를 두며 고민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지요.

일하느라 정말 바쁘게 하루를 보낸 것 같은데, 일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체스나 바둑을 두는 사람처럼, 아니면 타임차지를 하는 변호사처럼, 내가 실제로 업무에 집중한 시간을 기록해보면 좋습니다. 노트를 꺼내서 하루 종일 옆에 놓고, 내가 집중한 시간을 적어보는 겁니다.

한 일주일만 그렇게 기록해보면, 실제 나의 '시간관리 성적표'가 나옵니다. 막연히 하루종일 일만 했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실제로는 서류더미에서 문서를 찾거나 불필요한 개인전화를 걸거나 멍하게 보낸 시간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의 시간관리 내역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개선방안도 나올 수 있습니다.
내가 하룻동안 실제로 집중한 시간을 기록해보는 것. 성공적인 시간관리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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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지금의 고난들은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7.12)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대학 학위수여식 연설문' 중에서 (2005.6.12)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커다란 어려움을 만납니다. 고난을 만나 좌절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고난을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의 고난들이 어떻게든 미래의 성공과 이어질 것이라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미래의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과거를 되돌아 보아야만 연결할 수 있지요.
지금 너무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서, 그래서 미래를 바라보면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느껴져도, 훗날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 고난들은, 그 점들은 이어지고 성공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용기, 배짱, 운명, 숙명을 믿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한 달 전 스탠포드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했던 '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연설했습니다. 애플 신화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 '악동', '자의식 강한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모두 인정해주는 '컴퓨터 혁명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잡스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6개월을 다니다 중퇴했지요.
그리고 그는 입양아였습니다. 미혼이었던 그의 생모는 대학을 졸업한 양부모에게 아이를 입양시키기를 희망했습니다. 한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약속되었지만, 남자 아이가 태어났고, 그 변호사는 여자 아이를 원했습니다. 잡스는 대기자 리스트에 올려졌고, 남자 아이를 원한다는 부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잡스의 어머니는 주저했습니다. 양어머니는 대졸자가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부모는 잡스를 대학에 꼭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그는 입양됐습니다.

훗날 양부모의 약속대로 그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입학한 리드대학은 스탠포드대학 만큼 학비가 비쌌습니다. 노동자였던 양부모가 저축했던 돈 대부분이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6개월만에 그는 자퇴를 결심합니다.

"당시에는 꽤 두려웠지만, 훗날 되돌아보니 자퇴는 내가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들 중 하나였다."
잡스는 자퇴 후에도 1년 반을 학교 근처에 머물었습니다. 친구 집의 마루에서 잠을 잤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콜라 깡통을 모았습니다. 일요일마다 제대로된 한끼 무료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사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잡스는 흥미 없는 필수과목을 수강하는 대신, 정말 듣고 싶은 과목을 청강했습니다. 당시 리드 대학은 글씨체에 대한 강좌가 미국 최고였고, 잡스는 그 강의에 매료됐지요.

10년 뒤. 그가 첫번째 맥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당시의 경험이 커다란 도움이 됐습니다.
"내가 대학을 중퇴하지 않았더라면, 그 글씨체에 대한 강좌를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처럼 멋진 글꼴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 "지금처럼 내가 대학교 졸업식장에 가까이 와본 적은 없었다"라며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설했던 잡스. 학비가 없어서 대학을 중퇴해야 했었지만, 그는 고난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난들이 연결되어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지리라 믿었고, 자신의 용기, 숙명, 운명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애플 신화를 만들었고, 실패에서 재기했으며, '컴퓨터 혁명의 선구자'로 인정받았습니다.

* * *

1.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은 감동적입니다. 우리 경제노트 가족이신 daniel님께서 지난달 제게 잡스의 연설문 전문이 실린 웹페이지(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를 이메일로 알려주셨습니다. 전문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좋은 자료를 경제노트 가족 모두와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신 daniel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가족분들도 좋은 글을 만나면 제게 이메일로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경제노트의 첫번째 오프라인 모임이 드디어 열립니다. 7월19일(화) 저녁 7시~8시30분, 서울 선릉역앞 하이리빙 빌딩 4층입니다.
첫 모임의 강사로 한양대학교 이현우 교수를 모셨습니다. 베스트셀러인 '설득의 심리학'을 번역했고, 최근 '한국인에게 가장 잘 통하는 설득전략 24'를 출간한 설득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입니다.
물론 무료이며, 저도 참석합니다. 강의장 규모를 감안, 선착순으로 등록신청을 마감합니다.
많이 오셔서 좋은 강의도 들으시고 다른 경제노트 가족들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예병일 드림.

 

출처: 예병일의 경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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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극복한 사이클선수 랜스 암스트롱, 그리고 라이벌 얀 울리히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5.7.27)

1996년 세계랭킹 1위의 사이클선수 암스트롱은 생존률 절반 가량의 고환암 진단을 받았다. 이미 암세포는 그의 폐와 뇌에 퍼져 있는 상태였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고통스런 항암치료뿐이었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이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은 처음 본다"는 의사의 말처럼 새로 찾아 올 인생을 위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았다.

"고통은 순간적이다. 결국 고통은 사라지고 다른 게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중도에 포기하면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로 집약될 수 있는 암스트롱의 불굴의 정신력도 결국 암투병의 산물이었다.

암스트롱은 1999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암스트롱은 그 뒤로도 매해 3주가 넘는 기간동안 3400여 Km를 달려 인간 한계의 시험무대인 투르 드 프랑스를 올해로 7년째 석권한 것.

이종성의 '중도에 포기하면 고통은 영원히 지속된다' 중에서 (프레시안, 2005.7.26)





미국의 사이클선수 랜스 암스트롱. 며칠전 그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7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1971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암스트롱은 사이클 선수가 됐고, 1996년 투르 드 프랑스에 도전했지만 중도탈락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고환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암세포는 복부, 뇌, 폐까지 전이됐고, 생존 확률은 50%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소속팀은 결별을 통고했고, 항암치료로 몸무게가 줄어든 그는 다음해 겨우 신생 미국 우체국팀을 통해 다시 사이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했습니다. 투르 드 프랑스는 약 3주간 프랑스 전역 3500여㎞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 올해 참가자 189명 중 34명이 중도포기했을 정도입니다. 1999년 이후 그는 올해까지 7년 연속 정상에 올랐습니다.

암스트롱이 투병과정에서 보여준 '삶에 대한 의지', '불굴의 정신력'이 지옥의 레이스라는 경기에서 7년 연속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겠지요.

그의 삶을 보면서, 그의 강인한 정신력에도 감동을 받았지만, 얀 울리히라는 선수의 모습도 그에 못지 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2003년. 암스트롱은 라이벌인 독일의 얀 울리히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접전을 펼쳤습니다. 울리히는 줄곧 2위를 달렸습니다. 제15구간. 암스트롱은 응원 나온 한 어린아이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울리히로서는 넘어진 암스트롱을 제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었지요.
하지만 울리히는 사이클을 세우고 암스트롱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고, 암스트롱이 일어나자 다시 경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해에도 우승은 암스트롱이 차지했지만, 그의 7연패라는 위업 뒤에는 울리히라는 '아름다운 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암을 이겨내고 '지옥의 레이스'에서 7연패를 한 랜스 암스트롱. 그리고 그의 평생 라이벌이자 그와 '아름다운 레이스'를 벌였던 얀 울리히.
모두 가슴에 오래 남을 멋진 사람들입니다.

출처 : 예병일의 경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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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2018 - 나는 왜 출근만 하면 예민해질까 (머리 매킨타이어)


(일은 혼자 다 하고 인정은 못 받는 직장인을 위한 존재 증명 프로젝트)



 


 영향력은 리더십이다.

 영향력은 정치력이다.

 곧, 조직에서 리더십은 정치력이다.


 정치력을 긍정적, 부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우리는 긍정적인 정치력을 향상해야한다.


 주식시장에서는 시장에 대응해서 투자를 하라는 말이 있듯이


 회사에서는 회사 문화와 체계에 따라 긍정적인 정치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과 행동은 다르다.

 말과 행동이 같으려면 말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좋은 정치인은 후보시기에 사탕발림 말과 공약을 던져두고 당선 후, 행동으로 옮기는 정치인을 말하며, 존경받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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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MKZ 무이자 플러스 할부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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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적용] 


2017 SW 기술자 노임단가





2017 엔지니어링 기술자 노임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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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MBA 수업 결과 학점



고생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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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MBA, 점수, 학점

변경된 재활용 분리수거 배출요령


출처: 머니투데이

2018년4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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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한 이유... 리더십과 결단력  
저자: 예병일 |  날짜: 2006년 03월 02일    



(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3.2)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에 산재했던 탁월한 지식층 엘리트들이 아닌,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하셨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나의 생각으로는 그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어부들의 결단력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그들은 밤새 인내력 있게 기다릴 줄 알았고, 이때다 하고 판단이 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물을 잡아 당기는 결단력의 사람들이었다.
해양학자들은 어떻게 고기를 잡는가에 대해 호텔에서 세미나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어부들은 검푸른 파도 위로 달려나가 구슬땀을 흘리면서 고기들과 직접 온몸으로 부딪치는 행동하는 자들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이런 야성미 넘치는 제자들을 통해서 그 극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단시일 내에 로마제국 구석구석으로 번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홍의 '거인들의 발자국' 중에서 (비전과리더십, 214p)







리더가 갖춰야하는 덕목들은 많습니다. 인간됨, 능력, 동기부여...
그중 '결단력'도 좋은 리더가 꼭 갖고 있어야하는 덕목입니다.

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는 "리드한다는 것은 결정하는 것이다"(To lead is to decide)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리더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져야하는 결정, 그 영향이 심대한 결정을, 그것도 매일 여러번 내려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론 그 부담을, 그 스트레스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리더의 존재 이유가 결정에 있을진대, 결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한홍 목사는 예수님이 지식층 엘리트들이 아닌 어부들을 제자로 선택한 이유가 어부들이 갖고 있는 결단력 때문이었다고 해석합니다. 결단력과 행동력이 부족한 지식층이 아니라 검푸른 파도와 싸우며 거칠은 자연과 맞서는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고, 그들이 리더가 되어 기독교를 널리 퍼뜨렸다는 것이지요.

결단력있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리더. 기업의 운명, 조직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리더의 모습입니다.


Posted by SB패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