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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소양관리

[자기경영]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

by SB리치퍼슨 2010. 11. 5.

치킨게임이랑 의미가 유사한거 같네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청난 피해나 비용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고 부릅니다. 너무 지나친 대가를 지불한 사후문제로 결국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된 경우가 이 말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근원을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피로스(Pyrrhus)는 기원전 3세기경 북부 그리스 지방에 있는 에페이로스의 왕 이었다 합니다. 당시 로마제국과 맞서 대승을 거둘 만큼 그 전략과 위세가 대단 했는데 역사가들은 알렉산더 대왕에 비교될 만한 인물로 다룰 정도로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피로스 왕은 로마군과 두 번째 전투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 겨우 승리를 하게 됩니다. 승리는 했지만 아군의 피해가 워낙 커서, 이런 식의 승리는 오히려 우리를 망하게 할 것이라 탄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세 번째 전투에서 피로스는 로마에 대패하고 그 나라도 몰락하게 되고 맙니다. 이렇게 피로스의 승리로 비유할 수 있는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수 없이 반복하여 일어납니다. 영국의 예가 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영국이 결정적으로 쇠퇴한 가장 큰 원인이 세계2차 대전에서의 승리에서 비롯 되었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연합국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었지만 나라 경제는 파산에 이르렀고 그 많았던 식민지는 하나 둘 씩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싸움이나 전쟁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교육받아 왔습니다. 평화와 화합 그리고 사랑이 제일이라는 교육도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어디를 가더라도 사회 구성원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한 법과 규범으로 적절한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나 싸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정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모양과 조건과 시공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진리 아래서 작든 크든 관계를 설정하며 살아가고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 혹은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시점에서 협상과 타협의 기술을 하나씩 습득해가게 됩니다. 모체로부터 나와 이 세상의 공기를 처음 호흡하게 될 때 태아가 아기로 변화하며 세상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리며 인생의 시작을 선전포고한 시점에서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그리고 나아가 친구들간의 관계를 이어나가며 실은 수많은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수한 전쟁에서 패배하기도 하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앞서 언급한 '피루스의 승리'를 수 없이 체험해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하여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게 되고 이 전쟁이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아면서도 죽으라고 싸우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즉 다시 말해 알고도 미련한 전쟁을 감수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 많다는 말이 더 정답일 것 같습니다. 막연한 승리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고 우리가 전쟁을 할 때 겉으로는 전쟁의 상대와 전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많은 경우 실상은 우리 자신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가장 힘든 전쟁이 바로 나를 통제하기 위한 자신과의 전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자면 본인 스스로가 혼인한 배우자와의 반복되는 전쟁을 하고 있다면 본질은 배우자와의 전쟁이 아닌 바로 스스로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왜 우리는 자고나면 바뀔 수 있는 생각의 차이로 서로 전쟁을 하야만 할까?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까지만 가면 당장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될 때가 많습니다.

 

반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세상은 패자의 편이 아니라 승자의 편이기 쉽습니다. 그리고 승자가 되지 않고서는 용서와 관용의 여유를 허락받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생사를 가를 사업의 세계에서 양보와 경쟁의 거부를 반복한다면 생존권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가정의 안녕을 지킬 수도 없는 나약한 '사회 적응 부적격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명산(名山)의 소나무 그늘아래 가부좌를 하고 수행의 길로 가지 않는 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싸움에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이 피로스의 승리가 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도 반드시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필자의 대학 시절 한 단체에서 선거에 출마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선거전은 치열했고 각 후보를 밀던 사람들의 중상모략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당시 어리고 나약한 심성을 가졌던 필자는 1차 투표에서도 1위를 했고 2차 투표에서도 1위를 했지만 후보자의 난립으로 과반수 득표를 획득하지 못해 3차 투표까지 가야 했습니다. 2위와 큰표차로 앞서고 있던 까닭에 3차 투표에서 당선이 당연시 되었지만 필자의 감성의 반항으로 후보를 사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필자는 후보사퇴의 변을 멋지게 연설하였고 기립박수를 받고 단상을 내려왔고 일부 지지자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사태까지 이어지고, 멋진 사나이가 될 수 있었으나! 결국 필자는 졌습니다. 다름 아닌 중상모략과 비방을 견디지 못하고 현실에서 도피했으며 결과는 선거에서 추구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큰 후회를 하였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역사에 저는 이름이 올라갈 수 없는 '후보사퇴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약해지는 문제점을 사십대의 중반에 이른 지금까지도 고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자신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라는 말에 저는 한표를 찍고 싶습니다.

 

우리가 거부하고 싶어도 우리는 전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필자가 선택한 어휘가 '전쟁'이지만 그것은 '경쟁'이어도 좋고 '전투'이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결론적으로 '도덕성'의 문제입니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패배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예를 들면, 부시는 이라크에서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했다라는 말을 합니다.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본다면 답이 나옵니다. 바로 그러한 판단의 핵심 기준이 '도덕성'입니다. 전투를 하는데 무슨 도덕성 따위를 거론 하는가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도덕성이 없는 전쟁은 이길 수도 없고 이긴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패배를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혹시 당신은 전쟁 중에 있습니까? 전쟁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평화와 안정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까? 나의 생존을 위한 전쟁입니까? 아니면 상대를 파멸시키지 위한 전쟁입니까?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전쟁이 결국 내 자신과의 싸움이요 전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미 이 전쟁을 결과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출처: http://club.linxus.co.kr/ECOCLUB_2442/74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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