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미팅왕'과 '미스터 하숙집' -봉준호의 살 맛 나는 부동산- 봉준호 닥스클럽 대표이사 | 05/23 1989년 5월 오후… 실록이 아름답게 세상을 녹색으로 덮고 있었다. 대학가에는 1학기의 중간 고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신촌 Y大 중앙도서관에서 한바탕 큰 소음이 났다. 두꺼운 안경을 낀 남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음이 나는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런, 쯧쯧…” “침이나 흘리지 말지.” “얼마나 시험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정외과 K양이 도서관 책상 위에 머리를 박고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부시시…” K양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이 흐리고 정신이 몽롱했다. 왼손으로 ‘쓱…”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헉!” 시계를 보니 3시 10분… 전공 시험이 10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K양은 허겁지겁 경영대 건물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 “하이고… 저 진상… 누가 데려갈지…” 하숙집 아주머니는 K양 방을 청소하면서 또 중얼거렸다. 방안에는 컵라면 그릇과 우유 곽, 새우깡 봉지, 벗어 놓은 속옷, 널부러진 책, 이불과 베게, 커피믹스… K양은 Y대 앞 하숙집에서 “찍힌 애”였다. -------------------------------------------------------------------- 내가 찍힌 애를 알게 된 것은 그 하숙집으로 들어오고 일주일쯤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 후보를 뽑아 주셔야 한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날벼락치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내용을 들어보니 총학생회장이나 단대학생회장 출마 연습을 하는 웬 여학생의 고성이었다. 내 대각선 방에서 살고 있는 하숙생 “찍힌 애”… 바로 그 K양이었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왼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는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고함치는 내용을 노트에 쭉 받아서 적어 보았다. 십오분쯤 지났을까?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기에 나는 옷을 주워 입고 그 방 문 앞으로 향했다. “똑똑” 노크 소리에 큰 목소리가 조금씩 사그러들더니 방 주인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학생… 산에 가서 연습 좀 하지…” “죄송합니다. (긁적 긁적) 하숙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내일 과대표 선거라서…” “총학생회장 선거도 아니고 과대표야?” “네… 저한테는 좀 중요한 거라… (긁적 긁적)”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연신 머리를 긁어댔다. 나는 눈만 껌뻑였다. 소란죄로 처벌하거나 미워하기엔 너무도 순진한 인간이었다. 며칠 후 토요일 저녁 7시쯤… “똑똑”하고 누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하숙집 아주머니려니 하고 “네”라고 대답한 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누군가 방문을 열더니 한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책상에서 의자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K양이었다. “저… 아저씨… 미팅하실래요?” “응? 나 요즘 좀 바쁜데…” “괜찮으시다면 지금 1시간만 시간 좀 내주세요. 남자 한 명이 펑크를 내서요…” “지금?”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신촌로터리 B다방으로 갔다. B다방 한쪽 구석에 5명의 남자와 5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들은 대학교 3학년, 4학년의 복학생들. 여자들은 대학교 3학년생들이었다. 나만 직장인이었다. K양과 K양 친구 L양이 기획자 겸 주선자였다. “자, 남자분들은 각자의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 주세요. 여자분들은 눈을 감으시구요.” 나는 쑥스럽게 볼펜을 꺼내 놓았다. 라이터, 열쇠고리, 반지, 수첩 등 다양한 물건들이 테이블 위에 모아졌다. “자, 여자분들은 여기서 한 개씩들 집으세요.” “다 집으셨어요? 그럼 각자 파트너를 따라서 각자의 자리로 이동하세요.” 오분 후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찍힌 애”였다. 그녀는 몹시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아저씨, 죄송해요. 그렇다고 너무 실망 마세요. 제가 아저씨하고 1차로 차 한 잔하고, 2차엔 제 친구 이쁜 애 소개 시켜 드릴께요.” “히~~~. 괜찮아.” 마음씨가 이뻤다. “너 고향은 어디냐?” “부산 인데요.” “넌 꿈이 뭐냐?” “커플매니저요.” “그것 참…” 다방에서 설탕 가득, 프림 가득 쓴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우리는 대학가 깊숙히 위치한 싸구려 횟집에 가서 모듬회 한 접시와 소주를 시켰다. 잠시 후, K양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오더니 퀸카 C양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저씨, 인사하세요. 제 친구 C예요. E大 3학년이구요. 저하고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노량진 D학원에서 재수도 같이 했어요.” 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의 미인이었다. “이런…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데… (C양에게) 실례지만 어디 사시나요?” 내가 물었다. “전 E大 앞에서 하숙하고 있어요.” C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럼 두 분 친구이신데 같이 사시지 왜 따로 사세요?” “서로 학교도 다르고,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요.” “각자의 역할?” “네, 우리는 대학 시절동안 서로에게 100번씩 미팅을 시켜주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K는 남학생들이 많은 하숙집에, 저는 여학생들이 많은 하숙집에 살기로 했어요. 후훗… 미팅하시려는데 여자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전화 번호 가르쳐 드릴께요.” “세상에…”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나는 인사동 골목에서 우연히 K를 만났다. 정장 투피스에 스타킹, 핸드백에 구두까지… 옛날의 츄리닝 Girl K양이 아니었다. “야… 너 많이 이뻐졌구나, 너 무슨 일 하니?” “미국계 B은행에 다녀요.” “그래? 친구 C는?” “N항공사에 다녀요.” “그래? 결혼들은 했어?” “아니요. 아직… 저 C하고 같이 살아요. 한 번 놀러오세요.” “그래. 정말 반갑다.” 며칠 후 나는 오렌지 주스와 성냥을 사 가지고 K양 집에 놀러 가서 너무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그 집엔 여자들이 자그마치 40명이나 있었다. K와 C는 E大앞 대형 한옥을 빌려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두 명의 하숙집 주인은 이쪽, 저쪽 집 내부를 안내하면서, 하숙 생활 10년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자랑스레 설명했다. 나는 한참을 웃었다. “고것들… 재주꾼일세…” 그로부터 몇 달 후, K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희 둘 다 결혼하게 됐어요. 그런데 하숙집 인수하실 생각 없으세요?” “그래, 정말 축하해. 근데 내가 하숙집을?” “네, 4천만원 투자하시면 월 200만원씩 버실 수 있어요. 아주머니 한 분만 잘 관리하시면 되고… 식사와 청소는 전부 자율제로 만들어 놓았어요. 하숙집 하시면서 좋은 파트너감도 물색해 보시고요. 흐흣…” 나는 하숙집 주인이 되었다. 40명의 고객을 가진 활기찬 중소기업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하숙생이 반으로 줄었다. “왜 그러지?” 나는 하숙생들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여러분… 하숙집이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나요? 허심탄회하게 말씀 좀 해주세요.” 2~3시간쯤 술잔이 오가고, 여학생들이 입을 열었다. “미팅이 없어졌잖아요. 이성 잘 만나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지도사 언니도 없고…” 그 하숙집에 다시 인원이 차는데 정확히 1년이 흘렀다. 그리고, 3년쯤 하숙집 주인 생활을 잘 하다가, 가옥 매매로 하숙집이 헐리게 되어서 나도 대학가를 떠났다. Mr. 하숙집은 앞 건물과 합쳐져 대형 피자집으로 바뀌었다. -------------------------------------------------------------------- 얼마 전에 C가 찾아왔다. “아저씨 안산에 상가를 샀는데 고민돼서 죽겠어요. 이 돈 저 돈 모아서 현금 6억이랑, 은행대출 4억으로 6층짜리 상가를 샀거든요. 처음에는 임차인들이 꽉 차 있었는데 장사가 안된다고 하나둘씩 나가더니 지금은 텅 비었어요. 팔려고 해도 산 가격의 반밖에 안 준데요. 한 때는 15억도 넘었었는데… 그리고 매월 몇 백만원씩 은행 이자를 내야 하는데… 그 동안엔 월세를 받아서 은행 이자를 내고 얼마씩 남았는데 이제는 정말 큰 일이예요.” C얼굴에 수심이 가득 찼다. 나는 C를 데리고 안산에 갔다. 대학 캠퍼스 앞의 모양 괜찮은 상가였지만, 당장 불경기에 마땅히 입점할 점포주를 찾기는 어려워 보였다. “시간이 흘러야 될 것 같다. 당장은 팔리지도 않을 것 같고… 내가 연구를 해볼게.” 나는 건물 설계도면과 지적도, 건축물 관리 대장을 떼어 오게하고 주말 내내 스케치를 수십장 했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Y大 후문 까페에서 C와 K를 만났다. “이 문제는 결국 너희들이 잘 하는 방법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상가를 약간 손봐서 20개의 모던 스타일의 원룸으로 만들었다. 빨간 벽돌을 붙이고, 느티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그리고, 세대 당 500만원 보증금, 월세 30만원에 임대 놓도록 했다. 3달 만에 학생들과 업소 여성들로 원룸 20개가 모두 꽉 찼다. 그 후로도 몇 차례는 내가 왔다갔다하면서 손을 봐 주었지만, 그 다음부터는 믿을만한 근처 부동산 업자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세대 당 관리비 3만원씩 나오는 것은 모두 부동산업자가 갖고, 청소하고, 관리하고 임대 놓는 조건이었다. 임대 수수료는 별도로 또 주기로 하고… 그 후, 가끔씩 속을 썩이는 임차인은 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월세가 통장으로 잘 들어온다. -------------------------------------------------------------------- 2005년 5월 오후. 실록이 아름답게 세상을 녹색으로 덮고 있다. 대학가에는 1학기 중간 고사가 시작되고 있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우리 회사 상담실 한 구석에서 한 바탕 큰 소음이 들린다. 무슨 일인가 걸어가보니… 검은 머리에 웨이브 퍼머를 하고 붉은 빛 입술을 칠한 커플매니져 K아줌마가 상담용 책상 위에 머리를 박고 코를 골면서 자고 있다. 16년 전의 "찍힌 애" Miss 미팅왕 K양이다. “저런… 침이나 흘리지 말지… 밤에는 뭐하구…” |
출처 : 머니투데이
반응형
'경영,리더십, 성과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영/리더십] CFT(Cross Functional Team)의 개념 (0) | 2011.04.12 |
---|---|
[경영/리더십] 팀장과 매니저 (0) | 2011.04.04 |
[경영/리더십] 모든 사랑엔 조건이 붙는다(?) (0) | 2011.02.22 |
[경영/리더십] 정주영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임금 수준이 되기 전엔 절대로 100% 자기능력 발휘하려 들지를 않는다” (0) | 2011.02.10 |
[경영/조직] 직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열 가지 은유적 표현 (0) | 2011.0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