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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 과학

[건강/의학] [황치혁의 건강백세] 氣의 실체

by SB리치퍼슨 2019. 8. 18.

[황치혁의 건강백세] 氣의 실체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대화할 때에 당황스런 때가 있다. 양방 의학 지식에 익숙하지만 한방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과의 대화가 그렇다. 한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노골적으로 한의학을 폄하하는 이야길 하면 참기 힘들어 진다. 잘 풀어서 설명을 해 주자니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이 불평을 할 것이고, 그냥 보내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잘못된 인식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한의학에 대해 가장 이해를 못하는 개념은 바로 기(氣)다. 기에 대해서 이야길 하면 한의학을 무속신앙의 푸닥거리 수준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학력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못 미더운 표정을 짓는다. 원시 의학이라는 반응이다. 기가 존재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21세기에 뭔 헛소리냐라는 식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일요일, 예약도 없이 젊은 부부가 불쑥 한의원으로 찾아 왔다. 목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부인이 걱정스러워 인터넷으로 검색까지 한 끝에 치료를 받으러 온 것. 잠을 잘 못 자서 목을 움직이기 힘든 환자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잠시 생각한 후에 손에 있는 후계라는 혈에 침 하나를 놓고 목을 움직여 보라고 했다. 그 순간 부부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부부는 목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에 경탄했고 나는 기(氣)의 소통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손바닥에 침을 놓았는데 어떻게 굳은 목이 풀리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기의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척추선을 따라 흐르는 독맥에 막힌 기를 뚫어주기 위해 독맥의 원격 조정 혈(穴)자리인 손바닥 후계에 침을 놓았다고 말해 주었다. “자기 전에 화가 아주 많이 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부부 싸움을 심하게 했었다”는 대답. 한마디로 ‘기가 막혀’ 생긴 증상이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진료도 단 한 차례로 종료됐다. 

침을 배우던 시절, 구안와사로 입술이 치켜 올라가고 눈이 반쯤 감긴 환자를 치료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경탄한 적이 있다. 얼굴과는 멀리 떨어진 무릎 아래의 족삼리혈을 강하게 자극하자 삐뚤어진 입술이 스르르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던 것. 놀라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참 고민스러웠다. 환자들에게 이런 치료를 양방의 신경, 호르몬, 혈관계 등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갑갑했다. 내 머리의 지식으로는 기 밖의 다른 방법을 동원해 봤자 설명할 수 없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에 아픈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침을 맞은 경우가 있다면 좌우 경락의 기를 조절하는 치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할 때에 정수리에 있는 백회에 침과 뜸 치료를 하는 이유는 몸의 정중앙선을 타고 흐르는 임맥과 독맥의 기를 소통시키기 위한 것이다. 

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으로, 민간의 익숙한 치료법도 있다. 체했을 때에 손가락을 따는 행동은 기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체했다는 말은 “기가 정체됐다”는 의미이고 손가락에서 피를 내는 치료가 정체된 기의 움직임을 자극하기 위한 치료라고 보면 된다. 침치료를 통해 막힌 기를 제대로 뚫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급할 때는 손가락 사혈을 해도 도움이 된다. 

이처럼 침은 단순히 동통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의 기의 순환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침이다. 막힌 기의 흐름을 뚫고, 정체된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고, 편중된 기를 고루 나누는 게 침치료의 목적이다. 기의 흐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기가 부족할 수도 있다. 

기운이 떨어지고, 안면의 색이 누렇고, 말소리도 미약해지고, 몸을 움직이기 귀찮다면 기가 부족하다고 보면 된다. 기가 부족한 사람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기도 한다. 기허가 심해지면 추위를 많이 탄다. 기허일 경우엔 침보단 약을 쓴다. 인삼, 황기 등이 대표적인 보기(補氣)약이다. 

이처럼 기는 한의학의 진단과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이다. 진료를 하다보면 기의 실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단지 현대 과학으로 규명하지 못 한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북한 평양의대의 김봉한 교수가 40여년 전에 기 흐름의 통로인 경락을 발견했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아직 인정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등에서 기와 경락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체 의학을 하는 유명한 의대 교수님은 “경락과 기의 실체를 밝힌다면 노벨의학상 이상의 것도 수상할 수 있는 대단한 발견이 될 것”이란 말도 했다. 

누가, 어느 나라 연구팀이 기를 밝혀 주어도 좋다. 한의사들이 진료할 때에 항상 거론할 수 밖에 없는 기의 실체를 증명해 준다면 한의학은 변방의 의학에서 주류 의학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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