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는 빼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건강에 관련된 언급 중에 꽤 흔하게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나쁜 피, 즉 죽은 피는 빼버려야 좋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근거는 의학지식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피의 색깔에 따라 좋은 피, 나쁜 피를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더욱더 근거가 없습니다.
고여 있는 피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몸 안의 피는 계속 혈관을 따라 순환 하면서 산소 및 영양공급, 노폐물 제거 등 생명 유지의 핵심적 기능을 담당합니다. 따라서 주로 외상 등에 의한 모세혈관 등의 파열에 의해 특정 국소부위에 피가 고일 때, 이 피는 제 고유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고여있는 피를 나쁜 피라고 지칭하는데, 이렇게 순환하지 않고 고여 있는 핏덩어리(의학적으로 혈종이라고 부른다)는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일까?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습니다. 먼저 파열된 혈관을 막아 폐쇄시킴으로써 지혈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기질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 이후에 남는 영양소 등은 자라 들어오는 혈관을 따라 대식세포 등의 염증세포들이 모두 흡수하여 체내에서 재활용하게 됩니다. 멍든 부위(피하출혈)의 색깔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차츰 엷어지는 것은 이런 흡수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정형외과에서 골절이 있는 부위에 생기는 혈종은 골유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골절 부위 혈종의 기질화가 골절 치유의 첫 단계이며, 혈종 내에 생긴 섬유소 골격에 복원세포들을 받아들이면서 세포이동, 증식 등이 활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흔하게 골절 불유합의 원인이 되는 개방성 골절은 이러한 혈종이 상처를 통해 외부로 유출되어 버리기 때문에 골유합에 지장을 주는 것입니다.
고여있는 피는 근막증후군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이러한 혈종이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근막증후군 입니다. 이는 골절이나 혈관 손상 등에 의해 과도하게 혈종이 형성되어 특정 구획 내의 조직내압을 과도하게 상승시켜 발생하는데, 정형외과 응급질환으로 몇 시간 내에 조직내압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근육괴사로 사지를 잃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 때 고인 피는 어떤 의미로 나쁜 피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피자체의 성질이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양에 의한 기계적인 압력 때문입니다.
초기 타박상엔 얼음찜질이 효과적
일상생활 속에서 외상 등에 의한 손상을 받을 때 연부조직이 붓고 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단순한 타박상인지, 골, 인대, 혈관 등의 다른 손상이 있는지 감별을 해야 하며, 초기에 진단을 못하게 되면 치료가 훨씬 힘들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단순한 타박상인 경우, 손상 후 약 2일간은 얼음을 넣은 비닐주머니 등으로 수회에 걸쳐 20~30분간 찬 찜질을 하면 지혈이나 종창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며, 그 이후로는 뜨거운 찜질이 좋습니다.
따라서 보통의 경우, 혈종이 우리 몸에 해로운 경우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피의 색깔에 따라 좋은 피, 나쁜 피를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더욱더 근거가 없습니다. 같은 피가 함유하는 물질이나 순환경로에 따라 색깔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나쁜 피가 폐를 거쳐 좋은 피가 되어 심장의 박동에 따라 전신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형외과
김동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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