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성과,정책

"흥부전"에 담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역사

by SB리치퍼슨 2020. 1. 18.

흥부전

 

고전소설은 무엇보다 시대상황을 적극반영하고 있다

소설은 역사적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적극적인 맛을 풍기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내용을 가미시킨다

우리들이 알고있는 전래소설등은 실존한 인물은 아니나 그렇다고 전혀 허황한 인물이 아니다

 대부분 그시대상황에 있음직한 인물이거나 저자주변에서 활동했던 인물 또는 저자가 희구하던 인물인 경우가 많다

역사적인 상황을 축소판 처름 반영하고 있는 인물인것이다 "흥부전"은 부자형과 가난뱅이동생의 이야기이다

같은 형제이면서 성격이나 자식의 숫자등에 너무나 차이가 나는 케릭트이다

이처름 형제를 대비시켜 마음씨착한 사람은 결국 큰복을 받는다는 전통시대소설에 흔한 소제이다

흥부와 놀부가 한형제이면서 엄청난 경제력의 차이가 기본적원인은 바로 놀부는 장손으로 선영의 제사를

모시기때문에 호의호식하고 잘사는것이다

아들이나 딸중에 당연히 아들이 우선이요 아들중에서도 장자가 집안의종손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시므로

최대한 대접을 해야한다는 전통적 가부장제사회와 이에 따르는 재산상속상의 차별 이것이 "흥부전"을 풀어보는 주요한 열쇠가 된다 고려시대나 조선전기까지는 장남 차남 그리고 딸까지도 차별되지 않았다

 조선전기인 15세기경에 완비된 "경국대전"의 재산분배와 재산상속때 본처소생인 장남에서 혼인한 딸까지 모두 똑같이 분급하도록하고 있으며 집안의 가계를 잇는 사람에게 1/5을 더 주도록 명시하고있다

 아들딸 구별없이 똑같이 분배했던 사회분위기속에서 흥부와 놀부처름 출생에서 이미 엄청난 경제력의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없었을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주자성리학이념이 강하게 정착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같은 큰변란을 겪게 되면서

혈연공동체의식이 보다 강화되고 남자중심의 가족제도가 확산되었다

17세기에 작성된 "분재기"에는 딸의 상속재산은 1/3로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봉양과 제사가 재산상속의 주요한 기준으로

자리를 잡은것이다 흥부아내의 넋두리에서 보듯 "어떤사람은 팔자좋아 장손으로 태어나서 선영제사 모신다고 호의호식 잘 사는데 누구는 이리버둥대도 살기가 어려울까 차라리 나가서 콱 죽고싶소" 바로 장자중심 사회의 대표주자 놀부가 있게된다

조선후기에 부계중심의 혈통만 강조되었고 그중에서도 장자는 대가족구성원의 대표자로 우월적지위를 보장받게되었다

이러한 조선후기 가족제도의 변화라는 시대적상황에서 잘사는 형과 못사는 동생이 다수 탄생하게되며 이러한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을 이야기로 담아 형의 욕심과 동생의 순박함을 과장되게 대비시킨것이 "흥부전"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수있다

 장자상속이라는 가족제도 상속제도의 변화와 함께 "흥부전"에서는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상이 아주 사실적으로 반영되어있다

17세기이후 조선사회는 농업생산이 발달하고 상품경제가 확대되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어 나갔다

가난한 농민의 대표가 흥부라면 이러한 사회변동속에서 급부상한 신흥부자인 대표는 놀부라고 할수있다

 "흥부전"은 부자놀부와 가난뱅이흥부를 대비시켜 조선후기 사회경제적변화에따라 나타나는 빈부의 차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농업생산력의 증가 이에 따른 상업의 발달등으로 농민중에서도 부유한 농민이 나타나는가하면 자신의 경작지마저 잃고

임노동자로 전락하는 빈농층도 대량으로 나타났다 흥부는 바로 이러한 빈농으로서 임노동자로 전락하는 농민들을 대표하기도한다 특히 흥부가 부인에게 "우리 부부 품이나 팔러갑시다"라고한 대목은 자신의 날품을 팔수밖에 없는 어려운 농민들의 처지가 반영되었다 "흥부전의 하이라이트는 박을타는 장면으로 흥부의 박에서 쏟아져나오는 갖가지 귀중품과 풍성한 곡식괴 의복등은 당시 농민들이 가장 원했던것이 무엇인지 잘보여주고있다

더욱 박속에서 "동몽선습" "맹저""통감"등 책이 나오는 사실도 주목해보면 농민들이 공부를해서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모습이 은근히 소설에 반영된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과도 같은 추구이리라

 한권의 전래소설로만 읽어온"흥부전"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기회가 있어 간추려 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