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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이야기, 어떻게 하십니까 : 대화의 기술(1)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꽤 규모 있는 사업을 하는 친구가 불쑥 찾아왔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는데, 이 친구의 표정을 보니 그리 밝지 않습니다. 참을성이 없는 제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친구는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더군요. 밥을 꾸역꾸역 먹어치운 뒤에야 입을 엽니다. 조급한 성질의 저 같은 사람은 이럴 때마다 울화가 치밀곤 합니다만, 사정을 잘 들어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참아야지요.

친구는 여직원 채용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녀석이 경영하는 회사는 얼마 전 유명 백화점에 매장을 얻게 됐습니다. 그 백화점은 입점하기가 무척 까다롭다고 하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매장에 파견할 여직원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채용이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취업정보 인터넷 사이트에 ‘마케팅 분야 여성 인재를 구한다’는 광고를 올렸더니 무려 400여명의 여성이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다양한 고품질 경력자들이 대거 몰려든 셈입니다. 경영자로서는 입이 좍 벌어질 수 밖에요. 지원자 가운데 10명 가량을 추려 면접을 보았는데 난형난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3명으로 압축되었습니다.

경영진은 회의를 거쳐 그 중 한명을 최종 선발했습니다. 경력도 괜찮고 대인관계도 좋아 보이는 사람을 점 찍었습니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통보를 하고 출근하도록 했습니다. 헌데 그 사람은 그 다음날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보니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2순위 후보에게 연락했는데, 그 사람 역시 회사에 나와서 면담을 하더니 “다른 회사에 취업이 결정되었다”는 서운한 소식을 전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친구는 “사람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백화점 매장에서 일 하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원하는데? 채용해서 백화점 판매 일만 시킬 거냐?” 이에 친구는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판매부터 시작해서 일을 배우도록 한 뒤에 그 아이템의 마케팅과 기획 등 전반을 책임지게 할 것”이랍니다.

이 친구 회사의 사업 아이템은 약간 독특합니다. 여러가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요. 특히 그 해당분야는 소비재라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는 있으나,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잘못 팔았다가는 회수하고 애프터 서비스를 하느라 손해를 볼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똘똘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랍니다. 짧은 시일 안에 제품의 요체를 터득해 물건을 팔면서 살아있는 체험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케팅 기획을 해야 한다는 것이 친구의 주장입니다.

한: “웬만해서는 고된 백화점 일을 하려 들겠어? 매일 밤 8시 넘어서 퇴근하고 주말에도 못 쉰다는데. 백화점 매장에 있는 사람들 보니까 고생이 심하더라.”

친구: “백화점 일만 시키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XXXXX(아이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처음부터 마케팅 플랜을 짜고 기획을 하냐?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울 생각을 해야지. 나라고 하늘에서 떨어진 돈 가지고 사업 하는 줄 아냐? 바닥에서 구르다가 모아서 시작했지 않아? 너도 알지?”

한: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얘기를 했길래 하루 출근했다가 그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는 거냐? 무슨 말을 했어?”

친구: “백화점 얘기를 꺼냈더니,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이더라고. 나름대로 좋은 대학까지 나왔는데, 그런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지. 그래서 좋게 얘기를 했어. 당신은 우리 회사 XXXXX의 마케팅 담당자로 채용되는 것이다. 백화점에는 파견으로 나가게 된다. 일단 백화점에서 물건을 팔면서 경험을 쌓은 다음에 곧바로 본사로 복귀시키겠다고 약속을 했어. 그런데도 나오지 않으니 이거 참.”

한: “그게 문제다, 이 놈아. 얘기를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그렇게 빙빙 돌리는데 누가 믿겠어. 믿음이 가지 않도록 했구먼 뭘.”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해졌습니다. 입사를 희망했던 사람들은 사장의 ‘엉너리’에 마음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설혹 그 친구의 본뜻이 그렇지 않더라도 대화를 풀어가는 기술이 마치 엉너리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이를테면 ‘백화점 매장 담당을 뽑는데, 고급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케팅 담당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남들에게는 모르겠으나, 이 친구의 입장에서는 백화점 매장 담당이라는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백화점은 그 회사의 주력 아이템에 ‘고감도 안테나’ 기능을 제공하게 됩니다. 매출도 꽤 많이 잡힐 것으로 기대한 답니다.

한: “취업 사이트에 광고를 내면서 ‘마케팅 담당 여직원’으로 표기한 것도 문제지.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하도록 했으니까 첫 단추부터 네가 잘 못 꿴 거다. 그거야 지난 일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나라면 면접 때 이렇게 얘기하겠다. 당신은 앞으로 6개월간 백화점 파견 근무다. 1개월은 수습이고, 그 다음부터 정사원이다. 6개월간 백화점에서 물건을 팔면서 고객을 분석하라. 그 결과를 보고 본사 마케터로서의 가능성을 보겠다. 이런 조건에 동의한다면 함께 일을 해보자.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백번 낫지.”

친구: “그거 너무 야박한 것 아니냐? 면전에 대고 백화점 근무고, 본사로 돌아오는 것은 별도의 문제라고 하면 누가 취직하겠다고 나서겠어?”

한: “그래? 그럼 네 방식대로 계속 밀고 나가 보라고. 좋은 사람 만나면 다행이지 뭐.”

저는 그 사업가 친구가 직원을 채용할 때 약간의 ‘술수’를 쓴 것에 대해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경영을 하다 보면 매사에 솔직함이 1순위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때에 따라서는 과장도 있을 수 있고, 악의(惡意)없는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행위가 정당한 것 역시 아닙니다.

다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대화의 기술’ 문제입니다. 그 친구처럼 중언부언하면서 이야기를 이리저리 돌려서 혼란스럽게 만들고, 결국에는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될 때, 부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생각을 반추하다 보면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뒤 잴 것 없이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배경을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결론을 가장 먼저 이야기 하면 논점이 간명해져 판단 기준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배경설명을 들으면서 그 결론이 왜 나온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의문점이 있다면 질의 응답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서로가 모종의 합의 또는 결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냉정할 수도 있겠으나 ‘잘못된 만남’을 통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좋은 말로 현혹해 일시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는 있겠으나, 서로의 생각이 다른데 과연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어떤 제안이나 회의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결론부터 밝히고 그것에 간단한 부연설명을 마치는 것으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브랜드 명칭을 정하거나 광고 카피를 뽑는 등의 브레인 스토밍은 여기 해당되지는 않습니다만,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할 때에는 ‘결론부터 시작’ 기법을 통해 중언부언을 방지하고 논점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 때문에 짜증나서 못 살겠다. 무슨 쓸데 없는 소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 ‘대화의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대화의 기술’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을 ‘자초지종 상세히’ 스타일로 분류합니다. 어쩌다가 이런 분들을 뵙게 되면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저처럼 한가한 사람도 이럴진대, 시간에 쫓기는 경영자나 실무자 분들의 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함께 앉아있는 시간이 고역 그 자체입니다.

‘자초지종 상세히’ 스타일의 사람들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아껴가며 조금씩 풀어 놓습니다. 그 이야기의 발단부터 소상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서 자꾸 헷갈리게 되고 그 족보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흐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디테일하게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결말(현재)로 서서히 접근하다 보면 등장인물 가운데 80% 이상은 대세에 지장이 없는 ‘엑스트라 급’ 임을 알게 됩니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허탈해집니다. 결국, 몇 시간에 걸쳐 연출된 ‘대 서사시’는 1분짜리 토막극 만큼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압축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쳐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응답을 내놓겠습니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자초지종 상세히’ 스타일 사람들은 친절 과잉으로 분류될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의 뜻이나 사정을 잘 모르는 남에게 최대한 그것을 소상히 알려주겠다는 배려를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남일수록 가슴 속에 품은 말들을 잘 추려내 그 뼈대부터 잡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전달하되,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예의를 갖추고 처음 제시한 뼈대에 본인의 뜻을 차근차근 입혀나가는 방법이 좋다고 봅니다. 다만, 회의 때에는 결과부터 말을 꺼내는 것이 다른 참석자들에게는 오만 불손하게 비춰질 우려가 있으므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좀 부족해서 생각은 짧지만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식으로 서두를 여는 것도 방법이지요.

‘결론부터 시작’ 기법이 항상 효율적이며 좋다고는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마다 개성의 차이가 뚜렷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 역시 각양각색이니까요. 게다가 저 자신만 해도 이 글을 쓰면서 단도직입적으로 결론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핑계를 대자면 제 글이 잡설(雜說) 수준이라서 정연한 논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단지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왜 사람들은 시계를 볼까?’하는 생각을 자주 했던 분들에게는 권할 만한 것 같아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스타일로 다른 이들에게 뜻을 전하고 있는지요.
 

Posted by SB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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