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객만래 [千客萬來] (It has an interminable succession of visitors)


[한상복] 상대방의 의중(意中) 읽기 : 대화의 기술(2) 
 
한상복(㈜비즈하이 파트너, 전 서울경제신문 기자) closest@bizhigh.com  
 
 
친하게 지내는 여성 경영자 분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그간 연락이 뜸하다가 오랜만에 받는 메일이라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이 분을 만날 때마다 가르침을 많이 받았는데 이런 메일을 주셨더군요.

<잘 지내시지요? 어제 누군가와 나눈 대화 중에 제가 ‘아하’ 했던 대목이 있어 말씀 드리고 싶어서요. CEO들에게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얘기인즉슨 이 분이 아내와 함께 쇼핑을 가면 늘 싸우고 온답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더니 이런 모양이랍니다.

쇼핑을 가기 전에 아내가 오늘은 무엇 무엇을 살 거라고 미리 얘기를 하고 간답니다. 그래서 아내를 따라서 쇼핑 카트를 잘 끌고 다니다가 본인이 다 샀다 싶어 “그만 가자”고 하면 아내는 늘 “더 살게 있다”며 다른 방향으로 가더랍니다. 그 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는 거죠.

그 분 말이 “아내는 아마 마음 속에 오늘 살 물건의 목록이 정리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함께 가는 자신한테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이런 저런 것을 살 것이라고 일러주니까 자신은 그것 만을 생각하고 카트를 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끝났다 싶으면 또 사야 할 것이 있다고 하니까 짜증이 난다는 거죠.

그 분은 만약 자신이 그 날 구입할 품목을 미리부터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혹시 아내가 잊어버린 것 까지도 자신이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구입했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아니라면 최소한 아내의 의중을 헤아려 미리미리 물건이 있는 쪽으로 카트를 끌고 갔을 것이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싸울 소지도 없고, 잊어버려 사지 못하는 물건도 없었을 것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그분은 이런 부분이 꼭 벤처경영하고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CEO의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범할 수 있는 문제들이겠죠. 참 맞는 얘기 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참 맞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회사에서 어울려 일을 하는 모양새가 이 일화에서 등장하는 부부의 쇼핑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서로의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해 다투고, 때로는 그것이 커다란 분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남의 속’에 들어가보지 못하니 어림짐작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짐작으로 벌인 일이 잘못되거나 하면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공격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오차율 제로로 남의 의중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귀신이 아닌 이상, 남의 속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간의 경험으로 ‘이쯤 되면 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나올 거야’하는 정도의 추론만으로 상대방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됩니다. 제 아무리 황금의 콤비라도, 상대방이 알아서 내 뜻을 따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멤버들이 모여 만든 회사가 사분오열 상태라는 얘기를 최근에 전해 들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저에게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하는 통에 고민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아 그 모양입니다. 주요 멤버 가운데 다수가 짐을 꾸렸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어깨가 축 쳐져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그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을 나돌았을 때 만났던 그 중 한 분의 말씀이 귀에 선합니다. “모두가 가자는 길은 같은데…왜 사소한 것 가지고 다툼을 벌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분의 말씀에 정답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 말입니다. 항상 다툼은 큰 일보다는 작은 일에서 촉발되는 것 같습니다. 스타일의 차이가 대화에서 오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쌓이면 ‘꼴도 보기 싫은 사내의 적(敵)’으로 둔갑을 시키는 모양입니다. 이른바 미운 털이 박히게 되는 셈이지요. 미운 털이 박힌 대상은 그가 무엇을 해도 싫습니다.

스타일의 차이를 예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CEO가 간부를 불러 지시를 합니다. “이거 이런 것인데 한번 잘 만들어봐”하고 던져 줍니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의 일을 처음 대하는 간부는 사장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꼬치꼬치 묻게 됩니다.

사장은 대충 얘기하면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간부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스타일이 서로 다른 셈입니다. “부장이라는 놈이 그런 거 하나 알아서 못하나?” 결국 사장이 짜증을 내고, 간부는 머쓱해져 자신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는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만 기획서에서 낙제를 하고 맙니다. 출제자(사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니 정답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서로가 지치게 됩니다. 사소한 기획 거리에서 불신이 쌓이고, 서로의 간극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는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나옵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에 “나도 저 사람을 잘 알고, 저 사람 역시 나를 잘 알 것”이라고 자만을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이는 위험천만의 발상입니다. 10년을 함께 산 부부도 서로의 의중을 맞추지 못할 때가 많은데 회사 동료야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대화의 신호체계’를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상대라도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그리고 낱낱이 전달해 주어야 혼선을 줄일 수 있습니다. 혼선은 대화체계를 붕괴시켜 적대적 관계로 이끌어가는 주범입니다. 특히 체면 때문에 꺼내기를 두려워 하는 ‘돈 문제’일수록 그 위험성이 커집니다.

내 생각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전달하는 요령 터득과 습관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맺고 끊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우리 문화 풍토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싸가지 없는 인간’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잘못 읽혀진 나의 의중이 오해를 부르고, 그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관계의 파탄을 초래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오해의 여지를 줄여나가는 것이 조직 시스템의 활성화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화 초기의 작은 오해는 똘똘 뭉쳐진 불신 덩어리에 비해 풀어나가기가 수월합니다.

누군가의 스타일에 불만이 있다면 과감하게 얘기하고,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면서 상대방의 주변을 맴돌아 봐야 허망한 체념과 분노만 남을 뿐입니다.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누군가의 의중을 읽기 위해 고심하는 노력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문을 열고 당당히 걸어 들어가, 직접 물어보십시오. “네가 얘기를 하지 않는데 내가 어찌 알겠느냐”고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 역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의 비즈니스도 그렇지만, 회사 내부의 비즈니스(나를 팔고, 남을 사고)는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회사 안에서도 딜이 이뤄지지 않는데, 밖에서는 잘 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기술은 거래를 성사시키는 가장 주요한 수단입니다.

Posted by SB패밀리